본문 바로가기
역사뒤집기

측우기 발명자는 장영실이 아니다? 세종실록에 남은 세자 이야기

by !라스트댄스! 2026. 10. 25.
반응형

측우기라고 하면 대부분 장영실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세종실록』을 펼쳐 보면 측우기의 시작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의 맏아들, 세자였습니다. 세자가 왜 비가 올 때마다 땅을 파 보다가 결국 구리 그릇에 빗물을 받게 되었는지, 기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 숏츠 영상으로 보기: https://youtube.com/shorts/zXwLt7aflzQ

▶ 유튜브 채널 구독하고 매일 새 반전 이야기 받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Ll_qvdzLYgF4SQx8h4ecag?sub_confirmation=1

 

역사진실밝히기

1분 안에 뒤집히는 역사 상식. 우리가 당연하게 믿던 이야기의 진짜 출처를 찾아갑니다. 바이킹의 뿔 투구는 어디서 왔을까? 포춘쿠키는 정말 중국 과자일까? 교과서와 인터넷에 떠도는 '통념'

www.youtube.com

 

측우기는 장영실의 발명품일까요?

측우기는 흔히 장영실이 만든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종 시대의 과학 기구를 이야기할 때 장영실의 이름이 늘 함께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굳어진 인식입니다.

하지만 『세종실록』, 『연려실기술』 등의 기록에서는 장영실이 측우기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측우기의 출발점을 보여 주는 실록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실록에 남은 이름, 세자 이향

『세종실록』 1441년(세종 23) 4월 29일 기록에는 이런 취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근년 들어 세자가 가뭄을 근심해 비가 올 때마다 땅을 파서 빗물이 젖어 들어간 깊이를 살폈는데, 정확하지 않아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 궁중에 두어 그릇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조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자는 세종의 맏아들 이향, 곧 훗날의 문종입니다. 가뭄이 걱정되던 시기에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는 곧 한 해 농사와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땅을 파는 방법의 치명적인 허점

땅을 파서 빗물이 스민 깊이를 재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땅에 스며드는 빗물의 깊이는 흙이 얼마나 젖어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마른 땅과 젖은 땅의 결과가 달랐던 셈입니다.

특히 가뭄 끝에 적은 비가 내리면 빗물이 흙에 빨려 들어가 얼마나 왔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세자는 땅 대신 구리 그릇을 택했습니다. 그릇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면 흙의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요.

반응형

 

궁궐의 그릇이 전국의 제도가 되기까지

같은 해 8월 18일, 호조는 쇠로 만든 우량계를 대 위에 올려놓고 비의 양을 재자고 건의했고 세종이 이를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442년(세종 24) 5월 8일, 실록에 '측우기'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며 전국의 비의 양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제도가 확정됩니다.

이때 표준 측우기와 길이를 재는 자인 주척이 서운관과 팔도 감영에 보내졌습니다. 같은 그릇, 같은 자로 재게 되면서 지역마다 내린 비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입니다. 다만 호조의 건의를 근거로 세자 혼자 발명했다고 보는 시각에 다른 해석을 내놓는 칼럼도 있으니, 기록으로 확인되는 범위에서 이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흙 파기에서 시작된 빗물의 기록

지금 남아 있는 금영 측우기는 1837년(헌종 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름 약 14cm, 깊이 31.6cm이며 3단으로 조립하는 구조입니다. 오차는 약 0.51% 정도로 알려져 있어 지금 기준으로 봐도 정밀한 편입니다.

가뭄을 걱정하던 세자가 땅을 파 보던 일이 구리 그릇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전국적인 관측 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측우기 이야기는 한 사람의 고민이 기록과 제도로 이어진 과정이기도 합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측우기'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337

 

측우기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 기구.

encykorea.aks.ac.kr

• 주간경향 「측우기 발명자는 장영실 아닌 문종」 -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303031128481

 

[이기환의 Hi-story](73)측우기 발명자는 장영실 아닌 문종···일본인도 ‘엄지 척’

5월 19일은 정부가 정한 ‘발명의 날’입니다. 왜 하필 이날일까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고안·실험한 날이 1441년(세종 23) 음력 4월 29일인데요.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9일’이라 이날

weekly.khan.co.kr

• 이기환의 Hi-story 「측우기는 장영실 아닌 세자 문종의 작품」 - https://v.daum.net/v/93UqfqsbJn?f=p

 

측우기는 장영실 아닌 세자 문종의 작품…3단 조립품에 담긴 임금의 노심초사[이기환의 Hi-story]

해마다 5월19일은 정부가 정한 ‘발명의 날’인데요. 왜 하필 이날일까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고안·실험한 날이 1441년(세종 23) 음력 4월29일인데요. 이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19일’이라

v.daum.net

• 서울신문 「장영실이 측우기 발명했다고? 세종 아들 문종 아이디어였다」 - https://seoul.co.kr/news/life/2012/01/18/20120118022005

• 한국경제 다산칼럼 - https://www.hankyung.com/amp/2009051756261

 

[다산칼럼] 조선시대 '누런비'는 측우기를 낳고…

[다산칼럼] 조선시대 '누런비'는 측우기를 낳고…,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세종과 두아들 黃雨오자 실체규명, 세상사 이치찾던 선조 지혜 배우길

www.hankyung.com

 

※ 본문 이미지는 사료를 바탕으로 AI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측우기 #문종 #세종실록 #장영실 #세종대왕 #조선과학 #한국사 #금영측우기 #역사이야기 #조선역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