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속 "열두 척"이라는 말은 아주 유명합니다. 그런데 명량해전에서 실제로 싸운 조선 전선은 열세 척으로 설명됩니다. 한 척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리고 열두 척과 열세 척은 왜 다르게 전해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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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진실밝히기
1분 안에 뒤집히는 역사 상식. 우리가 당연하게 믿던 이야기의 진짜 출처를 찾아갑니다. 바이킹의 뿔 투구는 어디서 왔을까? 포춘쿠키는 정말 중국 과자일까? 교과서와 인터넷에 떠도는 '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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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척으로 싸운 명량'이라는 통념

명량해전이라고 하면 적은 배로 거대한 적을 막아낸 싸움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이미지의 한가운데에는 이순신이 올린 장계 속 '열두 척'이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차례로 따라가 보면 명량 바다에 나선 조선 전선의 수는 열두 척과 같지 않습니다. 열두 척과 열세 척 사이의 작은 간격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숫자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전쟁 안에서도 말하는 대상과 시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칠천량에서 남은 열두 척과 장계

1597년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은 크게 무너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때 배설이 탈출시킨 배가 12척이었다고 정리합니다.
선조가 수군을 해체하라고 지시하자,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이 있나이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답변이 바로 장계 속 열두 척이라는 숫자의 근거가 됩니다.
다만 이 대화는 기록으로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책상 앞에서 붓을 드는 장면처럼 영상에 담긴 인물의 행동 묘사는 사료에 맞춘 극적 재구성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해 주세요.
열세 번째 배는 어디서 왔을까

명량해전에 참전한 조선 전선은 열세 척으로 설명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칠천량에서 빼낸 열두 척에 백성이 나중에 가져온 한 척이 더해진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 한 척의 출처에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노컷뉴스는 노승석의 설명을 옮기면서, 김억추가 수리한 한 척으로 열세 척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전합니다.
영어 위키백과의 명량해전 항목도 열세 번째 배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추정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계의 열두 척과 전장의 열세 척은 집계 시점이 다른 숫자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133척 대 13척, 그리고 남은 여운
맞은편 바다에는 일본 전선 133척이 참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위키백과는 이와 별도로 정찰 32척도 언급하고 있어, 조선 수군과 일본군의 규모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전투는 1597년 9월 16일(음력)에 벌어졌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조류가 뒤바뀌면서 일본 배들이 서로 부딪혔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싸움에서 조선 수군이 적선 31척을 부쉈다고 정리합니다.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열두 척은 장계 속 숫자이고, 열세 척은 전장에 나선 숫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배 한 척의 차이는 기록마다 다르게 설명되지만, 장계의 한 문장과 명량의 물결 속에서 읽히는 태도는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 글의 장면 묘사는 극적 재구성이며, 난중일기 원문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 둡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량대첩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250
명량대첩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이순신(李舜臣)이 명량(울돌목: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
encykorea.aks.ac.kr
• Wikipedia, Battle of Myeongnyang -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Myeongnyang
• 노컷뉴스 - https://www.nocutnews.co.kr/news/4071042
'명량' 이순신과 구루시마의 칼싸움 진짜 있었나
영화 '명량'에서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조선군의 대장선에 올라탄 다음, 머뭇거릴 새도 없이 이순신에게로 돌진한다.
www.nocutnews.co.kr
※ 본문 이미지는 사료를 바탕으로 AI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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